보졸레-누보는 포도를 알코올 발효시킨 후 숙성 없이 병입한 즉시 먹는 와인입니다. 한동안 경거망동한 기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들썩일 정도로 거대한 행사가 되었으며, 와인을 조금 아는 와인 도사들의 ‘보졸레-누보는 와인이 아니다’라는 말에 기자들은 서둘러 보졸레-누보 죽이기에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비싼 비용을 들여 비행기를 태워 보졸레-누보를 수입한 와인 수입상은 희비를 번복했습니다. 물론 큰 손실을 본 업체들도 많았습니다.
최근 들어 보졸레-누보라는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졸레-누보 때문이 아니라, 막걸리 판매상들에 의해서입니다. ‘막걸리 누보’라는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단어가 생겨나면서입니다. 막걸리라고는 전혀 모르는 외국인을 앞세워서까지 막걸리 누보를 홍보합니다. 차라리 예쁜 여자를 한복 입혀 광고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 아마도 여성부에서 당장 성적수치심을 유발한다며 당장 광고를 내리라 하겠죠.
잊혀가고 있던,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막걸리가 전면에 나선 것에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적극 환영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막걸리나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막걸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누룩은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쌀은 수입산 혹은 오래되거나 품질 나쁜 국내산 쌀이 이용됩니다. 그마저도 소비자에게 부족할까 봐 아스파탐, 올리고당 등을 첨가합니다. 제조자들은 꿩 먹고 알 먹고 식으로 물까지 듬뿍 타 ‘단맛은 기본, 맑고 깨끗한 막걸리’로 무지한 소비자를 볼모로 만듭니다.
쌀에 관한 한, 어차피 국내는 특징이 규정된 지역 쌀이 없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한 것은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회사이름이 명품을 가장하고 강조되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좋은 막걸리가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은 ‘밀주’, 즉 개인이 정성껏 만들어 판매하는 소규모 생산 막걸리입니다. 언젠가는 막걸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성껏 만들어져 비싼 값에 판매되기를 바랍니다. 단, 아무리 잘 만든 막걸리더라도 500mL 내외의 크기라면 5천 원 이하라야 합니다. 막걸리는 서양의 와인이 아니라 맥주라른 것을 안다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소규모의 품질 좋은 막걸리가 많아진다면 우리도 정체불명의 ‘막걸리 누보’행사, 즉 막걸리 제조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 해 쌀 농사가 잘된 정도를 판가름할 수 있는 행사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보졸레-누보 행사가 상업적이긴 하지만, 그 해 포도경작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일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책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존해 몇 년산의 포도주가 좋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기억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 나라에서 그곳 환경과 날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좋은 경험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숙성 기간을 따로 거치지 않고 바로 마셔서 좋습니다. 오래 숙성된 와인의 좋은 점을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렇다고 숙성되지 않은 보졸레-누보가 와인이 아니거나 나름의 매력을 지니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가메(gamay) 품종의 풍성한 과일 향과 단맛, 혀를 적당히 자극하는 발포 등은 나름 충분히 사랑받을 매력이 있습니다.
며칠 후면 새로운 보졸레-누보가 나옵니다. 올해 보르도도 아주 좋을 것이라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2010년 샴페인은 못 볼 수도 있을 정도로 좋지 않습니다. 2010년 보졸레-누보는 어떨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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