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주를 세 번 다녀왔습니다. 첫번째는 휴식을 위함이었고, 두번째는 보리밥이 먹고싶어서였고, 세번째는 가족들과 함께 안동의 농암종택이라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보리밥도 함께 먹기 위함이었습니다.
첫번째는 봉화와 안동의 경계정도에 위치한 농암종택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점심이었습니다. 농암종택은 별채가 수십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가 간 날은 주중이어서, 넓디넓은 고택에 손님이라곤 저를 포함해서 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더 조용한 곳을 원했기 때문에 별채로 된 누각 한 채를 다 사용하였습니다. 덕분에 편하고 평온한 잠자리를 기대했지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청결문제 때문에 아주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이부자리는 손님이 바뀔 때 마다 항상 깨끗한 커버로 바뀌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미 여러사람들이 사용하던 것들이었으며, 쾨쾨한 냄새가 나서 도저히 이불을 깔고 덮을 수가 없었으며,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어쨌던 제 옷을 깔고 이불도 덮지 않고 잤습니다. 아래는 뜨겁고 위는 코가 얼 정도로 추워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경관은 마치 시계를 조선시대로 돌린 듯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묘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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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농암종택에서 준비된 아침을 주인과 함께 하였습니다. 주인부부와 손님 둘이었기 때문에 가족처럼 편하게 아침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반찬이 있거나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정에서 먹을 수 있는 깔끔하고 정성이 들어간 편안한 아침식사였습니다. 함께한 젊은 친구는 금년에 지에스칼텍스에 입사하여 연수를 마친 후 이틀 휴가를 받아 농암종택에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며, 남들과 다른 생각을 지닌 젊은 사람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식사 후 주인은 청량산에 갔다오기를 권했고 그 젊은 친구는 시간 때문에 서울로 바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서울 도착이 5시면 된다길래 저는 제 차로 같이 갔다가 영주버스터미널에 내려주기로 제안하여 청량산에 동행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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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은 김생, 최치원 등 많은 선비들이 극찬을 한 산이라 합니다. 경상도에는 악산이 흔치 않은 데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두 산이 악산이며 기개가 넘치는 산이라 합니다. 이 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좁은 길 옆으로 절벽들이 이어져, 소위 조용히 보내는 데? 적절한 산이라고 제가 농담을 하곤 합니다. 살짝만 밀치면 가파른 곳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함께 오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 농반 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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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와 영주로 향했습니다. 영주에 도착하니 12시 남짓이어서 점심을 먹여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식당을 찾다가 간판도 없지만 시트지를 유리에 바른 문에 보리밥이라고 붙어있는 집을 발견하고 들어갔습니다. 들어간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으며, 두줄로 아주 큰 양푼에 나물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개인양푼에 보리밥을 조금 담은 후, 콩나물, 무우채, 파절임, 돈나물, … 등을 가득놓고 비볐습니다. 콩나물을 먹는 순간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더니, 파절임을 먹는 순간 정말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맛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나물들이 짜지 않아 밥은 거의 먹지 않고 나물들만 잔뜩 먹었습니다. 가격은 삼천오백원이라 계산할 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을 때는 어머니의 맛이 느껴졌으며 맛있게는 먹었지만 아주 맛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련된 음식이 아니라 거칠고, 정성보다는 그냥 만든, 옛날에는 지겨웠던,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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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서울에서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어떤 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고 그 보리밥만 머릿 속에 가득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바로 차를 몰고 영주로 갔습니다. 영주에 세시 경 도착하니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고, 먹다 남긴 나물들만 있었습니다. 보리밥 아주 조금, 그리고 나물 가득, 가득. 두 그릇을 먹고 미안해 오천원을 드리고는 바로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오면서 생각하니 만원을 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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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후, 세번째.
며칠 후, 저희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가기로 결정하고 금요일 밤 열한시 봉화로 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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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사진은 한폭의 그림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