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습니다. 몹시 덥습니다. 최근 날씨가 35도를 웃돌고 전국 어디든 덥습니다.
더위를 이기기 위해 온종일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놓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죠. 어딘가 허전하고 힘이 없습니다. 더위로 빠진 땀, 지친 원기는 뭔가로 보충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삼계탕과 개고기에 위안을 얻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와인을 좋아한다면 다른 음식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시원한 맥주도 좋지만, 맥주가 지겹거나 – 배에 – 부담스럽다면 다른 음식으로 눈을 돌려보십시오.
저는 치즈를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치즈의 짠맛은 입맛을 살릴 뿐 아니라, 여러 야채와도 잘 어울립니다. 치즈의 단백질과 다양한 영양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치즈가 짜다고 염분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염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유제품의 짠맛은 우리가 느끼는 짠맛보다 염분함량이 많이 적습니다. 우리 혀가 느끼는 것만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특히 시원한 화이트 와인 한잔과 함께하면 혀에서 느끼는 오묘한 즐거움에 더위도 쉽게 사라집니다.
여름철 함께 먹으면 좋을 치즈와 와인을 추천합니다.
페타
더운 날씨에 떠올리지 않은 수 없는 치즈는 페타입니다. 강한 빛을 받고 자란 여러 야채와 곁들여 함께 먹는 짭조름한 맛의 페타는 여름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지중해의 야채라면 더 좋겠지만, 비슷한 야채를 찾아야겠죠. 강렬하지만, 자극이 적은 태양을 받고 자란 지중해 야채와 자극적인 태양과 큰 비를 거친 우리의 야채 맛을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땅도 다르기에 같은 야채라도 맛은 몹시 다릅니다.
야채는 여러 종류의 상추, 토마토, 가지, 당근, 호박, 빈스,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비트, 순무, 아스파라거스 등이 떠올려집니다. 야채 맛은 다르지만, 선택이 없기에 구하기 쉬운 야채를 사용해야겠네요. 야채를 생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종류에 따라 데치고 삶아 사용해도 좋습니다. 여러 야채가 어우러진 샐러드에 페타치즈를 깍두기 모양으로 작게 잘라 넣고 아끼는 올리브유만 부어도 맛있습니다. 허브가 있다면 넣어도 좋습니다. 야채의 담백함, 올리브유의 고소함에 치즈의 짠맛과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혀 안이 자극됩니다. 이미 와인 한잔을 곁들일 준비가 됩니다. 그리스의 사모스(Samos) 와인이 있다면 가장 좋겠죠. 그리스 신들이 즐기던 사모스 와인을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이 아쉽습니다. 가격대비 최고의 와인 중 하나이지만,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홀대받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들이 섭섭해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 와인이 아니라면 구하기 쉬운 프랑스 프로방스의 로제를 선택하면 좋습니다. 로제와인은 육고기, 생선, 야채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모짜렐라 디 부팔라
모짜렐라 치즈도 빠질 수 없습니다. 모짜렐라 역시 더운 여름에 더 잘 어울립니다. 물소 젖 모짜렐라 치즈는 토마토뿐 아니라 다양한 여름 야채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좋아하는 야채와 함께 먹어도 좋습니다. 입맛 없을 때 물소 젖 모짜렐라 치즈 한 조각에 잘 익은 토마토 한 조각을 얹어 먹어보십시오. 토마토의 강한 향과 신선함이 모짜렐라의 신맛, 진한 구수함에 어우러져 저절로 눈이 사르르 감길 것입니다. 그런 적이 없었다고요? 그럼 좋은 물소 젖 모짜렐라를 구하십시오. 대저 토마토면 좋겠지만, 대저가 아니라면 충분히 익고서 수확한 토마토를 사용해서 드셔 보십시오. 저절로 눈을 감게 될 것입니다.
물소젖 모짜렐라는 와인과 썩 잘 어울리진 않습니다. 굳이 찾는다면 모짜렐라와 같은 깜빠나(Campana)지방에서 나는 그레코 디 투포(Greco di Tufo)면 좋겠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가벼운 화이트나 레드가 모짜렐라의 진한 우유 향과 신맛과 어울립니다. 저라면 어렵게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 보다는 식전주로 맛있는 화이트나 거품이 있는 와인을 마신 후 와인없이 물소젖 모짜렐라의 맛을 즐기겠습니다.
염소 젖 치즈
저에게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치즈는 염소 젖 치즈와 러블로숑입니다.
제가 원하는 염소 젖 치즈는 아쉽게도 국내에 수입되는 염소 젖 치즈는 아닙니다. 국내 수입의 염소 젖 치즈는 염소 젖이 100%인 것도 거의 없을뿐더러 염소 젖 특유의 맛을 느끼기에 많이 부족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치즈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염소 젖 치즈는 늘 여행 후 구해오거나 친구가 구해준 것을 먹습니다. 염소 치즈는 크로텡, 셍뜨-모르, 샤비슈, 뿔리니, 셀쉬르셰르, 로까마두르, … 어느 것 하나 침샘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염소 젖 치즈 특유의 강한 향과 신맛은 야채와 잘 어울립니다. 샐러드로도 아주 좋습니다. 치즈가 많이 숙성되고 단단해졌다면 오븐에 구우십시오. 오븐에 구운 단단한 염소 젖 치즈는 겉은 바싹하고 속은 크림처럼 녹습니다. 향은 더 자극적이고 맛은 더 진해져 야채와 더 잘 어울립니다. 구운 염소 젖 치즈 샐러드는 맛이 특별하고 맛있기에 마니아들이 있지만, 비싸기 때문에 자주 먹기 어려운 귀한 샐러드입니다.
염소 젖 치즈는 종류에 상관없이 루아르 지방에서 생산되는 소비뇽 블랑과 잘 어울립니다. 미국, 칠레, 호주, 등 다른 국가의 소비뇽 블랑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세르, 뿌이퓌메는 와인을 즐긴다면 이미 즐겼거나 마셔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루아르 지역의 가메로 만든 레드와인도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소비뇽 블랑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부르고뉴의 화이트 와인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아마도 와인을 아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부르고뉴 화이트를 떠올리기만 해도 혀에 침이 가득 고일 것입니다. 부르고뉴 화이트에 침이 고인다면 반드시 생유로 만든 염소 젖 치즈를 맛보아야 하는 머스트(Must)입니다. 염소 젖 치즈의 맛을 모르고서야 와인 애호가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염소 젖 치즈와 즐기는 와인의 맛을 모른다면 이미 많은 화이트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와인의 라벨을 즐기고 잡지와 타인이 소개하는 유명와인을 섭렵하는 애호가가 아니라면 와인 이전에 투자해야 할 것이 생 유로 만든 염소 젖 치즈입니다. ‘반드시’입니다.
러블로숑
러블로숑은 특별한 치즈입니다. 특별한 만큼 프랑스 내에서도 수년 전부터 인기가 치솟아 이상한 러블로숑이 난무하는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즉, 그만큼 제대로 만들어진 진짜 러블로숑을 찾기 어렵고 귀합니다. 안타깝게도 러블로숑이라는 이름이 붙은 치즈를 맛보았기에 러블로숑의 맛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러블로숑 치즈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세금으로 우유나 치즈를 거두어갔기 때문에 급하게 대충 우유를 짭니다. 관리가 사라지면 다시 젖을 짜서 치즈를 만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다시 짠 치즈가 더 맛있었습니다. 러블로숑(Reblochon)이라는 이름은 ‘다시 짠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렇게 전통은 이어졌습니다.
러블로숑은 실온에 두면 아이보리의 속살이 크림처럼 흘러내립니다. 그래서 소프트 치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눌러서 치즈를 만들기 때문에 하드 치즈에 속합니다. 단단하게 숙성시키기보다는 단단한 외피 속에 속살이 부드럽게 익도록 숙성시킨 치즈입니다. 치즈를 실내에 두어 살짝 녹기 시작할 때 먹으면 좋습니다. 크림처럼 변합니다. 지나치게 크림으로 변하기보다는 살짝 변했을 때 시작하면 좋습니다. 치즈는 윤기가 강한 만큼 밀도가 높습니다. 입안에서는 마치 쌀 엿이 녹은 것과 같은 질감입니다. 입안에 들러붙을 정도로 진합니다. 짚 썩는 냄새, 숲 속의 냄새가 강하게 입안과 코를 자극합니다. 부드럽지만 강하게 입안에 들러붙은 치즈는 서서히 녹으면서 비할 수 없이 진하고 구수한 치즈의 맛을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어떤 와인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그러나 잘 어울리는 와인은 순수한 와인입니다. 포도를 혼합하거나, 오크를 강하게 사용한 와인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본-로마네 와인과 함께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본-로마네는 쓴맛이 좋고 뒤에 여운이 남는 단맛이 좋습니다. 그리고 신맛이 잘 받쳐주어 밸런스가 완성되면 어떤 자극도 없이 행복함만 남습니다. 유일한 자극은 유혹적인 우아함입니다. 매끄럽고 윤기 가득한 백옥같은 속살, 자극적인 향, 입안에 가득 차는 달콤하고 부드러움. 러블로숑 치즈입니다. 촌스러움 속에 숨어있는 러블로숑 치즈의 우아함 역시 본-로마네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 둘의 조합은 어떤 음식, 어떤 비싼 라벨도 관심 없게 만듭니다. 같은 마을의 사보아 화이트, 쥐라의 화이트, 가메 등 여러 와인 역시 섭섭하겠지만…
샴페인, 까바를 비롯하여 여름철 즐기기 좋은 치즈와 와인이 많지만, 다음을 위해 여기서 줄입니다. 더운 여름, 치즈를 좋아하고 와인을 즐기는 애호가만이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여름의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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