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게임: 영어), Gibier(지비에: 불어)로 불리는 야생 고기는 와인 애호가에게 특별한 음식이다.
와인 애호가들은 독특하고 특별한 것을 찾는 기괴한 성향으로 좀 더 자연에 가까운 그러면서도 좀 더 미각을 자극할 수 있는 음식물을 오랫동안 찾았다. 개구리, 달팽이, 거위 간, 송로버섯 등 이들 모두가 그러한 노력의 결과다.
특별한 와인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하다. 좋은 토양에서 잘 자라고 좀 더 자연에 가까운 농사를 통해 정성껏 잘 만들어진 와인 한 모금은 세상의 어떤 음료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준의 값비싼 와인이 아니다. 현대의 와인 취향이라면 좀 더 적당히 달고 좀 덜 산도가 강해서 마시기 편하고 자극이 적은 와인이다. 그러나 음식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산도, 조금 덜 단 맛, 조금 더 쓴 맛을 찾게된다. 특히야생 고기와 함께라면 더욱 이런 와인을 찾게 된다.
며칠 전, 제주도에 놀러 간 친구가 생애 최고의 고기를 맛보았다며 의리 있게도 사냥 군에게 부탁하여 야생 꿩을 두 마리 가지고 올라왔다. 야생이 워낙 귀한 지금이라 행여 가짜일까 걱정했지만 보는 순간 진짜임을 알 수 있었다. 깨끗한 발과 몸이 야생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속살은 흰색이 아니라 연분홍에서 검붉은 정도의 색이다. 이미 굽기도 전에 야생고기 특유의 향이 났다. 먹기도 전에 마음은 이미 기쁨과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어릴 때 야생 꿩, 야생 토끼를 자주 먹었지만, 지금은 구경조차 어렵다. 20년 전 프랑스에 살 때 먹은 야생 토끼, 수년 전 운 좋게 먹은 알프스 사슴고기, 그리고 코르시카 섬에서 먹은 야생돼지가 전부다.
아침에 잡은 야생 꿩은 저녁 10시에야 서울에 도착했으며, 12시 가까이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다. 야생 고기가 있다면 반드시 부르고뉴 와인과 함께 먹고 싶었다. 특히 본-로마네(Vosne-Romanée)와 먹고 싶었다. 내 아이디가 달리 본(vosne)인가. 평생 함께할 지기가 본(vosne)이기 때문이다. 야생 꿩을 가지고 올라온 친구는 지브리-샹베르텡(Gevery-Chambertin)과 함께 먹고 싶어했다. 어쨌든 그날은 아쉽게도 둘 다 없어 픽생(Fixin)과 마르사네(Marsannay)로 대신했다. 한 마리 더 남은 꿩을 위해서는 본-로마네(Vosne-Romanée)와 지브리-샹베르텡(Gevery-Chambertin) 다음날 준비되었다.
야생 꿩의 진한 야생 향, 고기가 주는 약간의 신맛, 더 강한 쓴맛은 놀라울 만큼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닮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특히 본-로마네 와인은 적당한 신맛, 진한 쓴맛, 그리고 뒤에 서서히 입안에서 감기며 올라오는 단맛이 나를 극도의 환희까지 느끼게 한다. 동시에 코와 입안을 가득 채우는 딸기, 각종 베리, 젖은 풀숲 향, 군 둥 내, 마구간 냄새 등 수많은 좋은 향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것은 아사로 만든 얇은 한복이나 원피스를 걸친 듯한 여인을 떠올리는 것이다. 와인의 연령은 여자의 나이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정도면 나는 거의 미쳤다. 제 3자가 보면 완전히 미친 상태다. 아마도 신의 물방울이 – 3, 4편 정도까지 보았다 – 지나친 과장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공중부양을 했다고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아쉽게도 이런 행복감을 주는 와인은 많지 않다. 나에겐 기껏 뽀머롤(Pomerol)과 부르고뉴 정도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수많은 오-메독(Haut-Médoc)의 특등급 와인과 뽀머롤의 페트뤼스(Pétrus)는 나에게 그저 고만고만하거나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와인일 뿐이다. 있으면 마시지만 절대 큰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은 와인이다. 진하고 탁하고 달지만 우아함이라고는 찾기 어렵거나 작위적인 향과 맛이 좋아하기 어렵게 만든다.
야생 고기와 부르고뉴 와인. 최고의 미식이다. 이틀간 이어지는 호사가 앞으로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셀린 스리스타의 레스토랑, 최고의 주방장도 쉽게 이런 미식을 제공할 수 없다. 몇해 전 점심으로 먹은 스위스 산악의 시골 식당 야생 사슴고기와 같은 날 저녁에 먹은 리옹에 있는 한 고급 레스토랑의 사슴고기는 극명하게 그 차이를 보여주었다. 미식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 저녁이었다.
* 아~ 뭐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꿩, 저 깃털 색, 자연의 색이 아니고선 흉내낼수 없는,
슈퍼 마켙 냉장실에 진열된 봉다리는 만지고싶지가 않군요, 이걸보고나선.
정말 환상적인 궁합이었습니다.
꿩고기와 본 로마네…
사실 전에 야생 꿩고기를 먹어본적이 있으나, 그때는 별로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와인없이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지 않았던 이유인듯합니다.
역시 와인은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할때 최고이고, 어떤 음식은 와인을 만나야 제 맛을 느낄수 있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본 로마네… 너무 맛있었습니다.
꿩고기와 본로마네 뒤에… 소고기와 세르강… 기름진(?ㅋㅋ) 소고기와 싱겁고 힘없는듯한 세르강…
상상이 되십니까?
그 전날까지도 맛있다고 침흘리던 소고기와 세르강이었는데.. 히히
사람의 입이 참 재밌습니다.
그러나, 그 후 며칠뒤 소고기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전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