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
영월오일장을 나서 사북을 향했다.
사북은 이번 여행 정규코스에서 살짝 벗어나는 목적지다. 사북을 결정한 것은 손가락화가 오치균씨의 작품에서 본 사북탄광촌의 정경때문이었다. 아주 옛날 우연히 지나게 된 탄광촌이었지만, 광부와 광부가족들의 삶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던 수십년 전의 기억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있다면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새벽 동이 트기 전 마을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하는 눈길을 지나 사북에 도착했다. 사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창원에 머물며 싫어했던 밤문화의 모든 것들이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온갖형태의 술집들이 가득찼다. 그리고 한집 건너 하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의 전당포들이 있었다. 강원랜드가 지역에 대해 어떠한 발전을 가져왔는 지 모르겠으나 이 지역사람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을 지닌 삶의 공간을 만들어 진 듯 보였다.
사북읍내
읍내라기 보다는 시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 곳곳을 돌아다니며 든 생각은 빨리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곳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 항상 가슴 찡한 모습으로 수십년 머물렀던 탄광마을은 지우기 힘든 또 다른 하나의 이미지로 변했다. 진정으로 잘 살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인 지, 혹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사악한 정치인들의 작품인 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우기 어려운 이미지일 것이 분명하다.
공업단지를 위한 뛰어난 입지조건을 지녔지만 이미 1940년대 주민과 많은 수의 보존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지금도 뛰어난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카마르그, 85도씨 정도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천연온천수를 보유하고 천연 골프코스로 만들기 최적의 자연을 지니고 있음에도 개발을 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는 삐끄에귀라는 지역이 떠오르면서 더욱 분노가 치솟았다.
사북에 있는 동안 억수같이 눈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험한 눈길을 지나 평온함이 보존된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 중 하나인 봉화로 향했다. 그 곳에 가면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온함을 찾아가는 길은 원래 평온하지 않다. 태백을 지나 고원지대를 오르고 내려야만 봉화에 도착할 수 있다. 오르막, 내리막, 굽은 길은 낮운전조차도 편하지 않게 만드는데, 밤길 운전에다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태백을 넘다
기어를 3단에 두고 달려야 했다. 도로에 눈이 점점 쌓여갔지만 얼지 않은 상태라 달리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눈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오히려 신이 났다. 간간히 지나치는 차들은 시속 2,30을 넘지 않았다. 무사히 태백에 도착했다.
혹 좋은 물건을 구할려나 싶어 차에서 내려 태백시장을 둘러보았다. 시간은 늦었지만 문이 아직은 대부분 문이 열려있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태백이라 하여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 보다는 힘든 살림 때문에 거의 중국산이라 보이는 싼 물건들이 유통되는 것같았다. 태백시장의 뒷골목이 옛날을 떠올려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가진 카메라가 90년대 중반에 생산된 제품이라 밤에는 사진찍기가 아주 어렵다. 렌즈에 의존해 찍은 사진은 아래에.
태백에서 봉화로 가는 길은 정말 어려운 길이다. 해발 900정도의 산길을 오르고 급경사길을 내려가야 하지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원래 가고 싶었던 만산고택에는 제사가 있어 갈 수 없었고, 농암종택으로 가야했기에 더욱 먼 길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출발.
시내를 벗어나면서 시작된 오르막길에서는 신이 났다. 기어를 2단, 3단 번갈아 가며 오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코너를 돌았다. 운전의 묘미는 코너돌기이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발지않고 도는 코너링은 운전재미의 정수다. 더우기 눈길이기에 더욱 신이났다. 아내는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전혀 걱정않고 기분나쁠 정도로 편하게 눈 감상을 하고있다.
오래 전, 후륜구동차로 스노타이어도 없이 알프스의 눈 속에서 큰 고생을 한 후 알프스에서 눈길 운전연습을 따로 했었다. 이후 눈길운전의 요령을 조금은 알 수 있었고 지금은 눈길이 편하고 재미있다. 얼마 전 서울에 큰 눈이 왔을 때도 가족과 함께 남산순환로를 넘어 종로에 아침을 먹으러 갔었다.
운전, 특히 눈길운전에 아무리 자신있다 손 치더라도 능력의 70%, 혹은 80%를 넘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편하게 차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라야 안전이 보장된다. 자동차는 달리는 능력보다 서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달리는 능력보다 안전하게 차의 방향을 틀 수 있고 제동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눈이 덮인 꼬불한 산길을 오르는 재미는 만끽했지만 내려오는 길은 상황이 거칠게 달라졌다. 눈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었고, 이미 많은 눈이 쌓여 있었으며, 차들이 전혀 다니지 않아 도로는 완전히 눈담요로 덮여있었다. 이 정도가 되면 차가 달리기 보다는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고 보아야 한다. 조금의 실수에도 차는 통제권을 읽고 가로방향으로 이동을 한다. 운전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눈이 너무 많이 싸이면 실수와 상관없이 차가 옆으로 가기도 한다.
기어를 1단으로 하고 최대한 느린 속도로 내려갔다. 항상 브레이크 상태와 정지되는 상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이동 후에 브레이크를 점검했다. 브레이크를 잡자 서는 것이 아니라 눈을 끌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고정된 바퀴는 눈길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이 때는 서는 것이 더 위험하다. 최대한 통제가능한 속도로 움직여 주며 방향을 잡는 것이 더 안전하다. 직선도로가 아니라 심한 곡선길이기 때문에 멈추기 보다 움직여야 한다. 최대한 느리게. 그러나 경사가 심해 1단에서도 통제불능정도의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핸들도 최대한 부드럽게,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물건처럼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먼 길은 아니었을 텐데, 지나는 차 하나 볼 수 없는 산악길은 지루했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던 것이 사북에서 기름을 가득채웠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차에서 따뜻하게 밤은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특히 차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가까웠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마음 먹었다. 무엇이든 끝은 있는 법.
긴 내리막을 거쳐 도착하여 아래로 내려와 안동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농암종택은 안동과 가까운 봉화 끝자락에 위치한다. 아래에 내려오자 심히 허탈했다. 눈도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아 마른 길이 펼쳐졌다. 조금 전 위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로 겪었던 일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전국 어디든 잘 닦여진 시골길을 기분좋게 지나 농암종택에 도착했다.
다음은 한 밤 중 시골에서 밥집찾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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