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부터 저는 김치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김치라는 종류는 모두 좋아했습니다. 특히 ‘짠지’라 불리는 – 아마도 짠김치의 준말인 듯 – 아주 아주 짠 김치까지도 좋아했습니다. 지금 제 혈압이 200을 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합니다.
보쌈김치의 추억
항상 부족했던 학창시절, 우연히 보쌈김치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기준의 보쌈김치가 아니라 학생이 감히 근접하기 힘든 가격일 뿐만 아니라 생각만 해도 행복한 김치였습니다. 단돈 천원이면 스무가지 이상의 안주와 함께 소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던 시절이었지만, 그 집은 김치가 천대받던 시절에 보쌈김치만 열배가 넘는 가격의 ‘비싼’ 곳이었습니다. 출출하거나 맛있는 것이 생각나면 머리에 떠오르고 입가에 침이 고이지만 그림의 떡이었습이다. 어쩌다 그 곳에 가는 날은 운좋은 날이었습니다.
대학 3년, 국제학술심포지엄의 통역가이드를 위해 두 학기 대부분의 시간을 통역 훈련에만 보낸 후 실제행사가 다가왔습니다. 참석자들이 도착하고 그 분들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당당한 분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였습니다. 연세가 지긋하고 큰 덩치에 인상좋은 분이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로 향하던 중, 저에게 김치이야기를 꺼내면서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곧장 향하자고 요청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보쌈김치집이 떠 올랐고 저는 그 곳으로 모셨습니다. 그 집은 테이블이 네개 정도 되는 작은 집이었습니다.
보쌈김치는 맛있는 속이 배추에 잘 싸여져 한 포기의 4분의 1 조각으로 깨끗한 접시에 정성스럽게 담겨져 나왔습니다. 옆에는 돼지고기와 두부가 함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술은 소주를 권했고 그 분도 흔쾌히 시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김치 속은 보기에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입안에서는 어울리는 향긋함과 상큼함이 일품입니다. 씹는 동안 개별재료의 맛도 잘 느껴질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렸을 때 느껴지는 복합적인 향과 맛은 왜 김치가 최고의 음식 중에 하나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잘 준비된 돼지고기나 두부와 어울렸을 때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지.
그 때, 저는 김치를 즐길 시간도 없이 그 분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긴 김치줄기를 정신없이 입에 넣고 계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놀라서 그 분에게 조금만 드시도록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태국의 시장골목에서 어떤 것을 먹어도 배탈이 난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걱정말라고 저에게 안도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도… 그래도 … 하면서 말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보쌈김치는 한 접시 더 주문되었고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김치를 앞에 두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김치의 대부분은 그 분이 드셨습니다. 처음 한국에 오신 분이었지만 이미 한국인 보다 더 김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 일어 벌어졌습니다. 이른 아침 그 분 호텔방문을 누르고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호텔카운터에서도 나간 흔적이 없다하였습니다. 결국은 호텔방문을 두드린지 20분이 넘어서야 그 분이 문을 열었습니다. 허리를 웅크리고, 배를 잡고, 눈은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린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급하게 중앙본부에 연락을 하고, 응급차가 오고, 종합병원 내과과장께서 뛰어오는 큰 일로 번졌습니다.
링거를 끼워 오전을 보낸 후, 다행히 오후 늦게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저는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 행사기간 내내 죄송한 마음을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그 분을 개별면담하기 위해 여러 분들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을 정도로 중요한 분이었다는 것을 안 후에는, 행사기간 내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그 행사에 참석한 많지 않은 국내패널들 중, 일부는 국무총리, 장관, 방통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그 분들이 등장할 때 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답니다.
보쌈김치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한 편으로는 식은 땀이 날 정도로 아찔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오늘 실은 보쌈김치를 만들려고 집사람에게 보쌈김치 재료를 부탁했습니다.
오랫동안 음식좋아하는 분들만 보면 보쌈김치 잘하는 집을 묻지만, 아직은 그 집 보다 나은 집은 커녕, ‘먹을 만 한’ 곳 조차 찾을 수가 없네요. 실은 오래전 부터 마음을 비웠습니다.
최근 다이어트를 하면서 보쌈김치가 다시 생각이 나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재료가 무엇이 들어가야 할 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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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 뱃속까지 든든해 지는 느낌을 가지게 되네요..^^
저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있는데…저도 모르게 학교길에 떡뵦이를 사들고 와버렸어요…ㅠㅠ
주말에 산에 가서 칼로리 좀 빼고 오렵니다..사장님도 다이어트 성공적으로 마치시길!!
과유불급 이겠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