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저녁을 사는 날이었습니다. 몇년전 건강검진을 처음 받았는데 그 때 건강검진이 혈압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혈압이 높을 것이라는 추측은 했지만 200이 넘어 모든 것이 중단되고 즉시 혈압에 대한 검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최근까지 한 분이 꾸준하게 관리를 해주신 덕분에 최근 120대로 떨어졌습니다. 도움만 받다가 몇몇 고마운 분들에게 저녁을 제가 대접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날짜가 한 번 미루어지고 오늘에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와인은 알려진 와인도 아니고 비싼 와인도 아니었지만 샤또 주인을 알고 있고 믿을만한 와인이었기 때문에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던 와인이었습니다.
오래된 와인들은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 속만큼이나 알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또한 속에 부유물이나 찌꺼기들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어떤 것들도 이렇게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드물겁니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와인이든 가격이 비싸든 싸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상응하는 대우(보관과 관리)를 해주면 해주는 만큼 분명히 맛과 향으로 보답하는 것이 와인입니다.
오늘은 저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오신 분들 모두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왔는데 다들 귀한 와인들이라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처음은 샴페인으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끼는 샴페인입니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우선 파리의 몇몇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하우스샴페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라벨은 그 레스토랑의 이름으로 대신되어 있죠. 파리의 한 레스토랑은 오랫동안 그 샴페인을 사용하다가 어떠한 이유에서 다른 샴페인으로 바꾸었다가 고객들의 항의로 다시 복귀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비까르 살몽(Billcard Salmon)이라는 샴페인입니다. 풍부하고 부드럽다기 보다는 단순하고 깨끗하며 입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향이 좋습니다. 이 샴페인을 마시다가 다른 샴페인을 마시면 대부분은 뭔가 복잡하고 깨끗함(sharpness) 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한 와인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많은 것은 좋은데 너무 정신없을 정도로 많거나 무엇을 표현하려는 지 알기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데 조금은 적절하기 않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아마도 평생 좋아할 몇몇 샴페인 중에 하나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크리미한 자연치즈와 가니쉬를 얹은 구운치즈 까나페가 함께하여 맛을 더 살려줬습니다. 이후 약간의 그린샐러드와 거위간요리가 이어졌습니다.
메인의 첫시작은 두 분이 공교롭게도 쥐브리 샹베르텡을 가지고 오셔서 잔은 두개 두고 같이 비교하며 마셨습니다. 음식은 통영에서 올라온 자연산 활어인 도다리를 프랑스산 AOC크림 소스와 함께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은 생선이 화이트와인들과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생선에 따라서 소스에 따라서 어울리는 와인은 많이 달라집니다. 특히 부르고뉴식 크림소스는 화이트와인도 좋지만 특히 잘 익고 부드러운 레드와인과는 더할 수 없이 잘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와인의 등급은 일반 빌라쥬급과 프러미에급이었지만 둘 다 훌륭한 맛이었습니다. 둘 다 2004년 산이었습니다. 최근들어 부르고뉴 2004년은 아주 맛있게 익어 이제 먹기 시작해도 좋은 와인들이 많습니다. 기다림의 댓가입니다. 생선은 거의 레어에 가까웠습니다. 크림에 사용된 와인은 비까르살몽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시던 와인을 가지고 가서 요리에 넣는 경우가 많은 데, 크림소스는 넣는 와인에 따라 맛이 극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마시는 것을 아끼는 것 보다는 요리에 일부 사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두 와인의 비교아닌 비교를 곁들여가며 첫 메인은 끝이 났습니다.
두 번째 메인요리는 영주암소한우 꽃등심 스테이크였습니다. 저는 한우를 스테이크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우선 미국산의 공급이 생각처럼 원할치가 않고, 호주산은 고기 고유의 육즙이 없거나 사료로 키워 기름덩어리이거나 하여 호주산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일본화우라는 고기는 차라기 참치를 먹지 쇠고기라 먹기는 어려운 제대로 된 기름덩어리입니다. 고기의 맛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키워질 때 기름은 적고 적당히 질기며 육즙이 고소하게 우러나는 것인데 이런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고기는 드뭅니다.
드디어 기대하던 71년 세르강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저희 숙성실에 있었지만 나오는 동안 찌꺼기가 흔들렸을 가능성이 있어 몇시간 세워두었습니다. 디켄터로 와인을 옮기고 서빙이 시작되었습니다. 매그넘의 좋은 점은 와인을 붓거나 받을 때 마음이 여유롭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관상의 이유로 맛도 더 좋습니다. 와인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우아하고 맛있는 쥬스로 변해있었습니다. 다들 말씀도 않으셨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아쉬웠던 것은 아주 약간의 코르크 향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될 정도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마침 옆 테이블에 71년생이 있어 한 잔을 주었습니다.
고기와 와인을 즐기는 동안 한 분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홍콩갔다가 공항에서 나와 서울로 들어오는 길인데 이리로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인 좋은 것 을 홍콩에서 가지고 오는 중이라 다들 환영이었습니다. 얼마 후 도착을 하고 와인을 두 병 가지고 왔습니다. 레오빌 1966년산과 그 유명한 기갈 라물린의 꼬뜨로띠 1984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꼬뜨로띠를 마셨지만 제대로 먹은 기억은 한 번도 없습니다. 꼬뜨로띠의 참맛은 반드시 익어야만 느낄 수 있는데 대부분 수십년을 기다리기 어려워 너무 일찍 마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꼬뜨로띠는 역시 익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부드럽고 마시기 좋은 쥬스상태였지만 맛과 향의 스펙트럼 자체가 넓고 깊은 와인이라는 것을 쉽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와인의 취향과 큰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맛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와인인 것 같습니다. 비싼 이유가 분명한 와인이었습니다. 상당한 고가로 알려지 레오빌 1966도 훌륭했습니다. 보르도 와인, 특히 메독쪽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만은 만끽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모든 와인들이 가격을 불문하고 이름이 있건 없건 간에 모두 훌륭했습니다.
잘 알려진 와인, 알려지지 않은 와인.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와인은 와인 그 자체이지만 사람들이 평가를 다르게 하고 다르게 취급하고, 선입관을 가지고 맛을 달리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존중하며 만들어진 와인은 가격, 이름 모든 것들이 중요치 않습니다. 아끼고 정성스레 보관하는 만큼 분명한 맛으로 보답하는 것이 와인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다섯명이 와인을 7병이나 마셨네요. 결국은 한 분이 가지고 오신 와인은 따지도 못했습니다. 샤또 까농이었습니다. 절대 찬밥취급을 받을 와인이 아니었지만 세월에 밀려 다음번에 마시기로 하고 남겨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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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지 않은 사람 희롱하는 글이라 별 주고 맘 없으니 어이하리오
^^ 좋은 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일은 즐겁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