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적은 비용으로 여행하며 빵, 치즈, 와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여행객이었다. (보들레르, 낭만과 예술)

► 치즈 여행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스페인

와인 투어, 오페라 투어, 음식 투어 등 특별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여행, 특히 유럽여행의 시작은 유명한 도시나 지역을 잠시 방문하고 지나가는 여행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여행을 알게 되면 점점 전문화된 여행을 찾게 된다. 근래 들어 다양한 여행상품이 생기고 있으며, 많은 여행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모든 여행이 환상적이고 꿈같이 아름다운 여행일 것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와인 투어를 꿈꿀 것이다. 음식을 좋아한다면 미슐랭 가이드의 유명한 레스토랑을 꿈꿀 것이다.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를 좋아한다면 비엔나, 베를린,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밀라노의 고색창연한 극장을 꿈꿀 것이다.

모두 다 좋다. 어느 하나 환상적이지 않은 여행이 없다. 어쩌면 꿈꿔온 것보다 더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여행의 최고는 이들 어느 것도 아닌 치즈 여행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치즈 여행이 최고다.

맥주를 좋아해 수년간 뮌헨을 비롯해 독일 이곳저곳을 다녔다. 클래식 음악은 생활이다 보니 유럽의 많은 콘서트 홀을 다니고 즐겼다. 운이 나쁘면 비싼 일등석을 구입하고서도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20유로에 왕과 왕비에게 주어지는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동양인에게는 로열석을 쉽게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기분 나쁘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 최고의 극장은 샹젤리제 극장으로 남아 있다. 규모는 작지만, 가장 클래식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공연에서 가장 신경 거슬리는 사람으로 인한 소음이 적다. 미슐랭 가이드 식당도 많이 다녔다. 좋은 음식을 기대하지만, 등급에 상관없이 멋진 음식은 있지만, 제대로 맛있는 음식은 만나기 쉽지 않다. 비싼 돈을 내지만, 진짜 최고의 음식을 먹고 있는지 장난친 음식을 먹고 있는지 구분되지 않아 화날 때도 많다. 창의도 좋지만, 어설픈 모방에 화날 때가 많다. 나에게 최고의 식당은 프랑스 본(Beaune)에 있는 별 없는 작은 식당이다. 샐러드, 수프, 개구리, 스테이크, 닭요리 모두 최고다. 자살한 미셸린 스리스타 주방장 베르나르 르와조가 별을 달기 전 이곳에서 진을 치고 살다시피 했다 한다. 페트뤼스, 르뺑, 메오-까뮈제 등 잘 알려진 와이너리를 비롯해 사람의 발길조차 닿기 어려운 시골, 산골 구석의 알려지지 않은 와이너리까지 수많은 곳을 방문했다. 와인 시음만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와이너리 주인도 많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도 아무도 반기는 곳이 없는 치즈 여행에 비할 바가 아니다.

► 치즈 여행은 막연한 말이지만 특별하다. 맛있는 음식이 있고, 좋은 와인이 있다. 음식이 마음에 들고 와인이 마음에 들면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그리고 치즈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가다 보면 어느새 치즈라는 단어 자체를 잊어버린다. 주변이, 경관이 아름답다. 단순히 아름답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답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정경, 상상 속에조차 없던 정경들이 펼쳐진다. 운 좋으면 마을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가 마을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도 일으킨다. 그러나 이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관광객인 내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이 이방인인 나를 구경하고 있는 뒤바뀐 상황을 알아차리게 되면 잠시 착각한 것을 알게 된다. 시골 오지 치즈 마을은 그만큼 흡수력도 좋고 친근하다. 치즈 마을에는 괜찮은 호텔이 드물다. 시골구석 방을 얻어야 한다. 마치 옛날부터 그곳에서 살던 유럽사람이 된 듯한, 중세시대 영화의 실제 상황 속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마음이 편하다. 와이너리에서처럼 쌀쌀맞고 딱딱한 대접을 받거나,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짜 맞을 필요도 없다. 이방인으로 느끼던, 일원으로 느끼든 상관없이 환대한다. 와이너리에서 보는 비슷비슷한 정경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소, 양, 염소, 풀, 꽃, 들판, 산이 다르다. 치즈 여행을 몰랐다면 평생 보기는커녕 알지조차 못했을 자연과 삶의 공간을 볼 수 있어 좋다. 와이너리? 또 다른 리그다. 부르고뉴, 보르도, 스페인 등 곳곳의 친구들은 와이너리에 놀러 와 며칠 같이 지내자고 한다. 좋은 와인과 좋은 사람이 함께라면 더없이 행복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행의 기간이 길다면 모르겠지만, 제한적인 기간이라면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치즈 여행을 위해 이내 떠나버릴 것이다. 치즈 여행이 좋아 잠시라도 함께 지내자는 와이너리 주인 친구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은 때가 많았다. 와이너리에는 좋은 와인, 좋은 음식, 좋은 친구가 있지만, 치즈 마을이 더 좋다.

치즈 여행이 행복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좋은 자연, 깨끗한 자연, 넓은 들판, 푸른 하늘 속에서 동물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저 동물이고 싶고 저 동물보다 덜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정경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아주 불행한 삶은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동물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 젖소보다 저기 양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줄이고 행복한 시간을 늘리려면 일 년에 한두 번은 이런 공간 속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의무감조차 든다. 질투, 시기, 투쟁, 악의, 무례함, 비통제 등이 난무하는 복잡한 도시의 삶 속에서도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맛볼 만큼 우리는 똑똑하지만, 더 순수하고 더 깨끗하고 더 아름다운 행복함과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거나 그를 위해 행동할 만큼은 똑똑하지 않다.

내가 실천할 수 있으리라 여기진 않지만, 언젠가 치즈 투어 전문 가이드가 되어 있는 나를 생각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